오랜만에 바인더에 관한 글을 씁니다. 지난 주 바스락 모임에서 <노트의 기술>이라는 책으로 독서 모임을 한 영향일까요. 제가 가지고 있는 바인더(노트)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럴 때면 책이 발휘하는 힘은 참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리를 하면서 10권 정도 되는 서브바인더 중 가장 아끼는 주간 계획표(2012~2016)을 오랜만에 열어봤습니다. 2012년 9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작성했던 주간계획표부터 한 장, 한 장 넘겨보니 제 5년간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습니다.
어떤 시기에는 빽뺵하기도 하면서, 또 어떤 시기에는 여백으로 가득했다가.
이 바인더를 종종 모임 식구들이나 코칭할 때 보여드리면 많은 분들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모닥불님은 꾸준히 잘 쓰실 줄 알았는데, 때론 안 쓰시기도 했네요.'
그렇습니다. 때론 슬럼프가 오기도 하고, 그렇다보면 바인더를 쓰기 싫은 날에는 저 멀리 내팽개쳐져 있기도 하니깐요. 그래도 다시 정신줄 잡고 바인더를 부여잡고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다짐한 순간부터는 또 그 여백들이 제 인생의 흔적들로 가득 채워지기도 합니다. 분명 바인더를 꾸준히 쓴다는 건 쉽지 않았지만 시간, 일정 관리를 위해 바인더를 쓰면서 참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2012년, 바인더를 처음 쓸 땐 무엇보다 꾸준히 쓰는 습관이 중요했습니다.
2014년, 꾸준히 바인더를 쓰니 이제는 쓰는 것 뿐만 아니라 취업을 위해 바인더를 통해 공부, 취업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2016년, 직장인이 되면서는 세웠던 계획들을 어떻게 달성하고, 부족한 점은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피드백이 중요했습니다.
그렇게 5년간 쓰는 것도 모자라, 바인더 모임까지 만들어 1년 이상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요즘. 바인더는 어느덧 제 인생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때론 바인더 영업 사원(?)이 되어 회사 동료나 친구들의 구입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쓰는 법도 알려주면서 이제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5년간 썼던 바인더는 제게 항상 좋았던 도구는 아닙니다. 때론 무거워서 제 어깨를 짓누르기도 하고, 과한 수집욕 덕분에 굳이 수집하지 않아도 될 자료들까지 모아서 그들을 바인더에 채워넣기 위해 프린터, 문구류, A4/A5 용지 등까지 구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분명 처음에는 바인더를 잘 써보겠다고 다짐해서 썼던 것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니 그 본질이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그때 우리나라에 미니멀 리스트 열풍이 불어 서점가에서도 '심플하게 산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등의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서적들이 눈에 띄기도 했습니다. 저도 그때부터 그 열풍에 탑승하여 미니멀리스트 ― 바인더 에 관한 내용으로 블로그에 포스팅하기도 했습니다.
바인더를 심플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2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해야 했습니다. 수집하는 양을 줄이거나, 다른 대안을 찾거나.
수집하는 양을 줄일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대안을 찾기로 나섰죠. 그것이 바로 원노트와 에버노트와 같은 디지털 도구들이었습니다. 그 전에도 각종 정보들을 저장하는 도구로 사용했으나 바인더와 같이 쓰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날로그 도구인 3P바인더와 디지털 도구인 원노트(에버노트)를 접목하니 제 인생은 디지로그 라이프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바인더를 열면 종이가 쏟아졌던 메인 바인더는 '이거 서브바인더죠?'라는 소리를 들을만큼 많이 심플해졌고, 20권이 훌쩍 넘었던 서브바인더는 10권 정도로 많이 줄었습니다.
한 때는 고정 섹션 8개, 프리 섹션 8개 합해서 16개로 가득했던 섹션이 2개로 줄었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제 바인더를 처음 보는 사람은 '이게 다에요?'라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네. 그게 다입니다.)
두꺼운 통가죽의 메인 바인더를 쓰고 있음에도 속지가 별로 없어서 꽤 가볍습니다.
2개의 인덱스 중 첫번째 인덱스는 Plan입니다. 작년 가을 책 <트리거>로 독서모임을 하면서 바인더를 펼쳐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는가?' 묻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작성하기 시작한 하루질문도 몇 개월째 잘 이어져오고 있네요!
Plan을 펼쳐보면 다른 분들의 바인더 같은 경우 사명, 꿈 리스트, 평생계획, 연간계획 등이 나옵니다. 물론 저도 처음엔 그 계획들을 작성하고 보관했지만 지난 몇년 간 저를 지켜본 결과 누군가를 보여주거나 스스로 카페에서 계획 세우는 시간이 아니면 보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습니다. 자주 보지 않는 자료를 늘 들고 다녀야하는 바인더에 넣어두고 다니기에 제 가방은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물론 그 계획들이 제 인생이라는 숲을 디자인해줄 멋진 녀석들이라 원노트에 연도순으로 보관하면서 종종 보곤 있습니다.
그렇게 원노트로 넘어간 자료를 제외하면 가장 먼저 월간계획이 등장합니다. 스마트폰 캘린더로 써보기도 하고 바인더에도 직접 써보기도 하고, 스티커를 붙여서 쓰기도 하고 여전히 월간계획은 여러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가장 작성이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는 하루 질문 리스트가 등장합니다. 매일 매일 나에게 하루 질문을 던짐으로써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확인하고 그 외에 수면 시간, 걸음 수, 독서량 등도 함께 체크하고 있습니다. (주간계획에 적던 많은 내용들이 하루 질문으로 넘어옴으로써 주간계획도 많이 심플해졌습니다. )
그리고 다음은 Weekly 섹션입니다. 역시 가장 먼저 주간계획이 등장하죠. 모임 덕분에 평일은 컬러체크를 곧잘하고 있지만 주말에는 여전히 잘 안 되고 있습니다. (한 번씩 주말에 시간을 내어 밀린 컬러체크를 하기도 하지만 방법을 강구해봐야겠습니다.)
매일 체크하던 것들이 하루질문으로 이동함으로써 주간계획도 예전에 비해 많이 심플해졌습니다.
그리고 주간계획에 이어서는 작년 12월부터 시작한 브런치에 포스팅할 내용들을 적는 포스팅 리스트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티스토리도 있어야죠.
그리고 예전에는 좋은 글이 있으면 모두 출력해서 바인더에 철해놓고 읽곤 했는데 이제는 거의 Feedly로 확인을 하고 원노트에 보관하여 읽기 때문에 따로 출력해서 읽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맘에 드는 글은 바인더에 보관해서 종종 읽곤 합니다.
그 뒤에는 1년동안 제가 읽고 싶은 북 리스트들이 있구요.
읽고 싶은 북 리스트를 한 장 넘기면 읽었던 북 리스트들이 나타납니다.
다 읽지 않은 책도 있지만 3월 초에 12권이면 그래도 꽤 많이 읽었죠?
그리고 이렇게 모임 계획을 세우기 위한 속지도 따로 뽑아 카페에서 계획을 세울 때 보곤 합니다.
바스락 모임에서 독서모임 할 때마다 제출하는 '본깨적 양식'도 있습니다.
독서모임을 하고 1달이 지나면 이 본깨적 자료들은 독서노트 서브바인더로 고스란히 옮겨집니다.
그리고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가에 대한 척도!
스티커판이 바인더의 거의 맨 뒤에 위치해있습니다.
양지사 4호 명함첩이 3P바인더와 호환된다는 소식을 듣고 구입했던 명함첩.
구입 초반에만 하더라도 직장에서 주고 받은 명함들을 모두 꽃았는데 그런 명함들을 그렇게 볼 일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명함은 명함스캔앱 '리멤버'로 모두 찍어두고 따로 들고 다니진 않습니다.
대신 저를 소개할 제 명함과 카페 쿠폰만 이 명함첩에 꽂혀있습니다.
바인더의 마지막에는 월간에 사용하는 스티커와 모임 출석 스티커가 대미를 장식합니다.
제 메인 바인더를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면
월간계획/하루질문/주간계획
포스팅리스트/기사/북리스트
모임계획/스티커/명함첩
+
메모를 위한 무지노트
이 정도가 되겠네요.
현재 메인 바인더에 보관 중인 자료를 굳이 섹션별로 정리하자면 더 많은 섹션들이 필요하겠지만, 그렇게 자료가 많지 않기에 따로 섹션 구분 없이 사용 빈도가 가장 높은 Plan,Weekly만 섹션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카드 수납도 되고, 펜도 꽂을 수 있는 바인더를 쓴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카드도 다 넣어두고, 펜도 몇개씩 꽂아두고 하다보니 바인더가 제법 무거워졌습니다. (그때도 거의 안 쓰는 카드들만 꽂혀 있었네요.)
그래서 지금처럼 아예 보관할 수 없게 앞 뒤로 아무것도 없이 바인더 역할에만 집중한 수제 바인더를 쓰고 있습니다. (펜이야 늘 가방을 들고 다니니 가방에 보관하면 되니깐요.)
굳이 쓰지 않은 자료들까지 보관하면서 시간/돈을 낭비하긴 싫었습니다.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만,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죠.
최근에 3P마스터분에게 디지로그 코칭을 해드리면서 다음과 같은 코칭 후기 메일을 받았습니다.
아날로그에 심취해 있을 때, 디지털은 너무 가벼운 존재였고, 디지털에 심취해 있을 땐 아날로그는 너무 무거운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만 택하다보면 가볍게 살아야하거나, 무겁게 살아야했었습니다.
하지만 둘을 적절히 보완한다면 정말 원하는 것만 갖춘 '심플 라이프'가 될 것입니다.
자주 보지 않지만 가끔 보는 자료들은 집에 두는 서브바인더(아날로그)와 원노트.
거의 볼 일은 없지만 버리기에 아까운 자료들은 원노트. (일정 시간이 지나면 원본은 버림)
앞으로의 계획 관련, 독서 관련은 바인더.
이렇게 구분지어 둘을 조화롭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인더를 쓴 지난 5년 중에 4년은 저에게 바인더는 정말 무거운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위 분류법을 통해 저는 바인더를 심플하게 쓰려고 합니다.
나는 바인더를 심플하게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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