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대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교지편집위원회'에서 언론사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간단히 영화나 책에 대한 추천평도 써보고, 나아가 내 이름을 걸었던 기사까지 손수 발로 뛰면서 작성했었다. 그 전까지 일기를 제외하곤 어떠한 글도 써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사실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을 쓴다는 건 참 곤혹스럽다. 생각나는 대로 쓰면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에도 상당한 '기술'이 들어간다. 맞춤법을 비롯해, 글의 흐름, 그리고 무엇보다 허구가 아닌 '사실'과 '진실'에 기반되는 글을 작성해야 한다. 악필이 명필이 되기 위해서는 피나는 연습이 필요하듯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논조만 주장하기보다 상대방을 설득시킬만한 논리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런 점 때문인지 기자는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직업이다. 아무나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글 솜씨가 있다고 해서 기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아는 것이 많다고 해서 기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기자라 함은 자신만의 식견이 있어야 하고 나아가 사회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그만큼 기자라는 직업은 어렵다.
현재 위키백과에 '기레기'라는 단어는 다음과 같은 사전적 정의가 올라와 있다. ⓒ wiki백과
현재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 인터넷 사용이 활발한 대한민국에서 카페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한 번 이상 활용해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란 어렵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커뮤니티는 다양한 사람들과 정보가 있는 만큼 일반인을 비롯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도 그 곳에 상주하고 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으로 세상을 떠들썩했던 적이 있다. 그때 '오늘의 유머'라는 사이트에서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어떤 한 후보를 비방하고 다른 한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하는 글을 조직적으로 올렸다가 사람들에게 적발된 사건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국정원 소속은 자신의 가족도 자신이 '국정원 소속'이라는 걸 모르게 신분을 숨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단순히 댓글 쓰다가 대한민국 만천하에 국정원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 인터넷 커뮤니티 분포지도 ⓒ Google 검색
진실을 파헤치지 않고 그저 퍼나르기만 하는 기자에게 일침하는 김부선 ⓒ 배우 김부선 Facebook
각 커뮤니티 간에서도 글을 퍼나를 땐 원작자의 허락을 받아야하거나 출처를 기재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지키지 않은 사람을 발견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불펌자(불법적으로 퍼나른 사람)에게 집중포화를 퍼붓는다. 기자라고 예외는 없다. 오히려 스스로 지켜도 모자를 판에 남의 글을 무단으로 도용하고 뉴스 기사 하단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라는 문장을 삽입해놓는 쓰레기들이 있다.
어떤 한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는 나에게 '아주' 가끔씩 기자들에게 연락이 온다. 보통 인터뷰 요청이나 글을 퍼가는 것에 대한 허락을 받기 위해서다. 보통 그렇게 요청을 하면 내 글이 인정받는 셈이니 흔쾌히 수락한다.
그러나 며칠 전 어떤 한 뉴스 기사에서 익숙한 글을 본적이 있다. 내가 자주 활동하는 커뮤니티에서 익명으로 썼던 글이었던 것이다. 기사를 정독해보니 인용 수준을 넘어선 무단도용 수준이었다. 100개가 넘는 댓글과 500개 이상의 공감을 받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받긴 했지만 그런 반응보다 누군가, 아니 기자나 되는 사람이 내 글을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것에 화가 났다. 해당 트위터에 멘션을 달고,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취했다.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해당 기자의 트위터를 살펴보았는데 대부분의 글들이 이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돌고 돌던 글을 각색해서 자신이 쓴 것마냥 쓴 글이 주를 이뤘다.
무단도용한 기자에게 온 답변, 진정성보다는 자신의 위치를 걱정하는 느낌이 든다. ⓒ boribat
처음에는 기자의 이런 행동이 너무 괘씸한 탓에 언론중재위원회나 해당 언론사에 직접 컴플레인을 넣으려고 했으나 신입 기자의 과도한 열정에서 나온 실수라 생각하고 앞으로 재발 방지만을 약속했다. 대학생 때 당장 제출 해야할 레포트가 산더미인데 답이 없을 때 레포트 파는 사이트나 남의 글을 베껴 쓰는 것은 대학생들 사이에 이제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습관을 사회까지 가져온다는 건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과도 같다.
'기레기'라는 단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자+쓰레기'라는 뜻과 더불어 전라도 사투리로 '기러기'를 그렇게 말하곤 한다. 생존을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철새과 기러기'의 모습이 현재 기자들의 모습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이계덕 기자님 또한 양심상 찔려서 기사 작성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 boribat
DSLR 카메라에서 사용되는 '단 렌즈'라는 것이 있는데 이 렌즈는 '발 렌즈'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줌이 되지 않아 해당 피사체를 확대하거나 축소하기 위해서는 직접 발로 움직이면서 비로소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모든 것이 귀찮아서 있는 그 자리에서 찍는다면 그 렌즈는 단 렌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번들 렌즈보다 못한 역할로 전락해버린다. 기자 또한 그렇다. 그저 인터넷 공간에서 돌아다니는 글만 카피해서 기사를 작성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일반 사람들이 나무를 볼 때 기자는 숲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여전히 2014년 대한민국은 부분적 언론 자유국(Partly Free)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역할에 있어서 기자들의 공이 컸다. '기레기'라는 단어는 이제 우리에게 기자보다 그들을 부르는데 있어서 더 익숙한 칭호가 되어버렸다. 아마 그들이 스스로 자성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한 이 칭호는 더욱 더 익숙해질 것이다. 지금도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인용할 글이 없나 하이에나처럼 눈팅을 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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