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그 쇳물 쓰지마라
광온(狂溫)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가끔은 시인의 진부한 시보다도 원석 같은 누리꾼들의 이런 시들이 구구절절 와닿는다.
내가 왜 시를 좋아할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긴 글을 싫어하고 긴 문장을 싫어해서 그런거 같다.
긴 문장 속에서 눈에 보이는 감동들보다 어쩌면 짧은 시 안에 함축되있는 머리속 감동이 더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 조은 -
행복
-나태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괴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내가 살아 보니..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 -
내가 살아 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을 넘지 않는다.
내가 살아 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란 것이다.
내가 살아 보니까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깍아 내리는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 보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다.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정으로 남을 대해
덕을 쌓는것이
결국 내 실속이다.
내가 살아 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남의 마음 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는 것 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다
장영희 교수의 글은 언제나 따뜻했다.
나 하나 꽃 피어
조동화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거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나는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박의상
나는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이른 새벽 꽃밭이었다
물을 한잔 들고 있었다
꽃 한 포기에 그 물을 천천히
주고 있었다
그리곤 갔다
해가 떴다
이런 시
밥
천양희
외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는 너에게
권태로워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너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어쩌면 밥 먹을때만 편식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도 기쁘고 좋은 것만 먹으려고 했던 건 아니였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플 때는 정말 식욕이 뚝 떨어지는데 그럴 때 오히려 밥을 더 많이 먹으라고 한다.
안 먹으면 그만큼 면역이 더 약해지기에 그런 것도 있지만 본질에는 정신력이 있다고 본다.
밥이든 사람이든, 삶이든 편식을 하지 말아야겠다.
별에 가기 위해 땅을 판다.
강아름
나는 별에 가기위해 땅을 판다
별에 가서 무얼할지 몰랐지만
모두 가려하기에 나도 가려한다
영문도 모르고 그냥 따라한다
손이 찢어지는 아픔을 견디면
무언가가 별에 데려다 준단다
내 별이 있긴할까 생각하다
힘에 부쳐 주저 앉아 위를보니
아아.. 이미 별은 너무 멀다
난 오늘도 땅 속에서 별을 찾는다.
한 고등학교의 문학 시간에 어떤 여학생이 쓴 시.
시를 읽는 내내 울림이 참 강하게 느껴졌다.
수능, 입대, 취업, 결혼까지 어떤 삶에 대입해도 기가 막히게 떨어진다.
모두 가려하기에, 나도 가려한다.
이 학생은 하늘의 별보다 땅속의 별을 택했다.
자신만의 별을 찾았을 거 같다.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옳은게 아니듯이
어린 학생들에게도 배울게 참 많다.
꽃을 보려면
- 정호승-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천천히 시를 읽다 마지막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를 보고 뜨끔했다.
간섭, 강요, 참견 등등 남에게 그것들을 행하기 앞서 묵묵히 기다리라는 메시지.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늘 조급함이 앞서버린다. 때로는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하다.
책 ㅡ헤르만 헤세
이 세상의 모든 책이
너에게 행복을 주지는 못하지만,
책들은 남모르게 네 자신을
너의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네가 필요로 하는 태양과 별과 달,
그것은 모두 너의 속에 있는 것
네가 찾던 그 빛은
네 자신 속에 있기 때문
갖가지 책 속에서
네가 오랫동안 찾던 지혜가
이제는 어느 면에서나 빛이 나니,
지금은 지혜가 너의 것이기 때문
비밀번호
사람의 마음을 열기 위해선 그 사람의 비밀번호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비밀번호를 알기 위해선 그 사람의 침전된 역사를 알아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어떤 사람의 마음을 알기 위해 억지로 밀어붙이면서 열지는 않나요?
특히 친한 사람일수록 그렇게 하기 쉽습니다.
오히려 처음 만난 사람이라면 마음을 열기 위해 열심히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며 신중하게 비밀번호를 알려고 하지요.
그러나 사람은 변합니다. 친한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가족, 친구, 애인도 어느 날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얻는 것은 쉬운 게 아닙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12월의 어느 날, 선배가 소개팅 날짜와 겹친다며 내게 인문강단 樂 , 강신주 편 티켓을 양도해준 적이 있다.
잔뜩 기대를 안고 KBS 별관으로 향하고 싶었으나, 그날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인해 가지 못 했다.
그로부터 1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불현듯 그때 생각이 났다.
총 4화로 구성되어있는 강신주 편, 거울-커피-선글라스-비밀번호,
우리와 익숙한 사물에 깃든 철학. 역시 강박사다운 주제였다.
그중 비밀번호에 관한 강연 중 와 닿았던 부분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정호승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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