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바로 7월 27일. 11번째 토익을 응시하고 왔다. 처음 토익을 시작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항공고'였는데 졸업 후 학교 재단인 항공사에 정비사로 취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정비사가 되기 위해 그때 당시 필요했던 토익점수를 취득하기 위해 반강제로 토익공부를 했었다. 사실 그땐 토익이 뭔지도 몰랐고 그냥 필요하다고 해서 했던 게 컸다. 뚜렷한 목적없이 '그냥 하고 싶다'라는 마음의 결과는 정비사의 꿈도, 내 토익 점수도 날려버린 채 대학에 진학하고 시간이 지나 군대를 전역하니 또 다시 토익의 필요성이 내 인생에 다시 강조되기 시작했다.
어느덧 우리나라에 내에서도 대기업 또는 중견기업만큼의 수입을 벌어들이는 ETS ⓒ ETS.org
나뿐만 아니라 전국의 대학생, 취업을 앞둔 취업준비생, 승진을 앞둔 직장인. 그리고 그 외의 여러 이유 등으로 우리 삶 속에서 토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크다. 1982년에 우리나라에 도입된 이래로 90년대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우리 생활 속 깊숙이 파고 들었고 지금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까지 되어버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왜 하필 아직도 '토익'이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많은 의문을 들게하곤 한다. 그 의문에 ETS는 여전히 침묵 중이다.
시험 구성 ⓒ exam.ybmsisa.com
그런 토익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위에서 얘기했듯이 토익은 우리나라에 1982년에 도입되었다. 초기에는 몇몇 기업에 한정되어 토익을 도입한 정도였지만, 90년대에 접어들고 응시인원이 매년 10만명씩 증가하더니 마침내 1995년에는 토익 응시 누적인원이 100만명이 돌파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현재는 육해공군을 비롯한 카투사, 국가고시 합격을 위한 용도 및 여러 대학 등의 졸업 요건, 직장인들의 승진 조건에 포함되기까지 이르렀다.
토익 주관사인 YBM사의 홈페이지에서 토익의 개발배경을 보면, 'TOEIC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언어 본래의 기능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중점을 두고 일상생활 또는 국제업무 등에 필요한 실용영어 능력을 평가하는 글로벌 평가 시험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 개발배경이나 취지는 어느 시험이나 참 논리적이고 기가 막히게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그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LC 100문제, RC 100문제 총합 200문제를 만점 990점 기준으로 매년 10회 이상의 시험으로 여전히 '잘 팔리는' 시험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토익 시험에 응시하면 응시일 이후 약 3주 후에 받아볼 수 있는 토익 성적표.
초기 성적표를 제외하고 추가 성적표를 인쇄하기 위해선 2,000 ~ 3,000원의 추가비용이 들어간다. ⓒ ETS.org
정말 취지에 맞게 쓰인다면, 토익으로 인해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개발되어 일상생활 속에서도 영어를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다면 아마 이런 글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ETS(또는 주관사 YBM)의 그런 취지와는 다르게 우리나라는 토익은 이미 영어 시험이 아닌 성실도 시험으로 평가된지 오래다. 토익 만점을 받는다고 해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을 뿐더러 해외에서 장기간 거주하고 온 사람들도 (물론 국내에만 거주한 사람들보다 시험을 잘 보겠지만) 시험의 결과가 뛰어나지도 않다. 그냥 엉덩이 무거운 친구가 고득점 받는다. 그리고 이미 그 시험의 초점은 '일상생활'이 아닌 졸업, 취업, 승진 등의 '도구'로 전락해버린지 오래다. ETS는 그런 도구를 기가막히게 돈 버는 용도로 잘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현재 시험비는 정해진 일정 내에 응시를 하면 42,000원을 결제해야 한다. 그리고 성적표를 출력하기 위해서는 초기 1회 출력 이후 추가 출력을 위해서 1매에 3,000원을 받고 있다. (2매 이상에는 2,000원씩에 측정되고 있다.) 이미 '시험비용'을 치루고 그저 자신이 받은 성적표를 출력하는데 말이다. 또한 정해진 일정 내에 시험을 접수하지 못하고 그 기간이 지난 후에 접수하려면 10% 금액이 가산된 46,200원을 받고 있다. 물론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그 기회를 놓쳤으니 추가적인 조치를 위해 가산되는 금액을 받을 수도 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웃긴 건, 정해진 기간안에 응시를 하고 변심 등으로 시험을 취소할 때 '돌려받는 환불 금액'이다. 환불 금액은 기간에 따라 총 3차로 구분되어 응시료의 40%에서 60%까지 받을 수 있다.
1차 : 정기접수 마감후 1주 (응시료 60%) - 25,200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2차 : 1차 기간 후 1주 (응시료 50%) - 21,000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3차 : 2차 기간 후 시험전일 까지 (응시료 40%) - 16,800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정해진 기간 안에 결제이후, 다시 정해진 기간 안에 받겠다는데 최소 17,000원이 깎인다. (무려 치킨 한마리 가격이다) 보통 시험을 취소하는 사유를 보면 '갑작스런 사정'이 있을 수 있고, '이전 시험에서 목표했던 점수를 이뤄서', 또는 그 외의 이유등으로 나눌 수 있겠다. 여기서 '이전 시험에 목표했던 점수를 이뤄서'라는 이유에 잠깐 초점을 맞춰보자.
최근 토익 시험 일정(이 단순한 일정 안에는 고도의 상술이 포함되어 있다.) ⓒ exam.ybmsisa.com
예를 들어 제273회, 제275회 시험을 치룬다고 가정해보자. (토익 시험은 달에 따라서 시험 횟수가 변화할 수 있으며, 매달 2회가 아닌 달도 있으므로 매달 1회 기준으로 예를 들었습니다.) 당장 900점의 점수가 필요하다. 그 점수는 273회 시험에서 찍을 수도 있고, 275회에서 찍을 수도 있다. 만약 273회에서 찍는다면 275회 시험은 굳이 응시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혹시 모르니 두 시험 다 응시를 해놓는다. 보통 다른 자격증 시험이라면 이전 시험의 결과발표일이 다음 시험 접수일 전이거나 혹은 접수일 안에 속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전 시험의 결과가 좋다면 굳이 다음 시험을 접수할 필요가 없고 그냥 그 시험을 마무리지으면 된다. 또한 결과가 좋지 않아도 결과 확인 후 바로 다음 시험 접수일 내에 다시 응시하면 되고.
그렇지만 토익시험은 273회에 시험을 접수하고 응시 이후에 결과를 보려면 약 3주 후인 8월 15일이 되야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다음 시험인 275회 시험을 응시하려면 273회의 결과 확인일인 8월 15일 이후가 아닌, 그렇다고 273회 결과발표일 며칠전도 아닌, 273회 시험 본 바로 뒷날 아침 8시까지 응시를 해야한다. 이 말은 즉 결과확인은 개뿔, 그냥 시험 못본 거 같으면 바로 응시하라는 말이다. 이런 고도의 상술때문에 응시자들은 안 그래도 42,000원이라는 거금뿐만 아니라 추가응시금액을 전적으로 부담하고 있다.
그리고 전적으로 응시자들이 부담하고 있는 상황을 살펴보면 최소40% ~ 최대60% 수수료를 제하는 환불 금액, 굳이 안봐도 되는 다음시험을 수수료 및 추가응시료가 아까워서 보는 경우들이 존재한다. 토익 응시자의 대부분은 주로 대학생들이다. 4천원에서 5천원짜리 밥을 사먹는 데도 벌벌 떠는 빈곤한 학생들에게 ETS의 이런 고도의 상술은 정말 파렴치한 짓 아닌가. 보통 원하는 점수를 취득하기 위해 10회정도의 시험(약 42만원)을 응시하는데 이 금액뿐만 아니라 토익이 취업을 위한 목적이었다면 면접보러 갈 때마다 성적표 추가 출력금액 또한 고스란히 그들 주머니에서 지불하게 된다. (토익 고사장에 가면 중앙방송에서 토익스피킹을 또한 그렇게 홍보한다. 7만 얼마 내란 이야기다.)
토익 응시료 인상률 ⓒ vicinity
토익은 한창 주가를 올리던 90년대 26,000원의 금액에서 1~2년 간격으로 2천원에서 3천원씩 올리더니 2012년부터는 42,000원의 금액을 받고 있다. 아마 상승추세로 보면 내년에 한번 올리려고 눈치를 보다가 반발로 그 후년쯤에 다시 한번 45,000원 이상의 금액으로 올리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이미 인상률을 보인 기간내의 누적인상률은 60%가 돌파했다. 무척 가파른 인상이다. 월급도 이렇게 안오르는데.
이미 우리나라에서 토익으로 지출되는 금액은 수천억 이상이 된지 오래다. 기본 응시뿐만 아니라 원하는 점수를 이루기 위해 수 권에서 수십권의 교재구입, 학원등록비 등의 부대비용 또한 이제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 돼버렸다. 오죽하면 강남역 인근에서 조금만 돌아다니면 메이저 토익학원이라고 일컬어지는 몇 군데의 학원들의 본관, 별관들이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계속 보인다. 분명히 좋은 현상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토익에 필요이상으로 너무 매달리고 있다. 물론 기업에서 대학교의 학점이나, 개인의 역량등을 평가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그런 것들을 대신해 '토익'을 어학능력의 척도가 아닌 성실함의 척도로 적극 사용하고 있지만 굳이 그게 토익이어야할까 싶다. 요 몇년전부터는 토익의 부작용을 대체하겠다고 토익 스피킹 및 오픽도 도입되었지만 그건 더 도둑놈이지.
나처럼 여러 번 토익에 응시한 사람들이라면 ETS 욕은 10시간 연속으로도 할 수 있다. (이건 너무 갑질이니까)
그리고 아무리 내가 이런 글을 써봤자 언제나 '을'일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욕을 하면서도 당장 내일부터 토익을 다시 시작해야하는 입장이다. 이미 개인이 선택하고 안하고의 문제를 떠나 한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은 이상 개인이 밀어내기엔 불가항력적인 존재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고, 어디에다 쓰는지 당최 이해되지 않는 이 쓸모 없는 '도구'가 꿈을 이루기 위해 각각의 학과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도서관에서 그들의 책만 보면 '어느 과인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학생들이 도서관 내에서는 '경제학과', '경영학과', '정보통신공학과'가 아닌 이미 '토익학과'로 뭉친지 오래다.
어떤 싫은 일을 할때 흔히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고 말하곤 한다. 맞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한다. 그러나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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