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오네모

글 작성자: Yongma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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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보는 철학 블로거가 한 명 있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서 좋다. 만약 블로그를 하지 않았다면, 그 블로거를 추천받지 않았다면 내 인생에 그의 글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가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간결하다. 한번쯤 가볍게 느꼈던 것들에 대해서 자신만의 논조를 깊게 풀어낸다. 때론 그의 타고난 철학적 재능에 시기심을 느꼈지만 이내 얼마 가지 않아 재능은 타고나서만 되는 게 아니라 노력 또한 뒷받침된다는 생각에 그 감정은 소멸되었다. 그는 확실히 주류가 아니다. 남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지만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안다는 강점이 있다.


최근에 그가 삶을 계란에 비유하는 글을 썼다. 흔히 우리는 알짜배기 땅을 '노른자 땅'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그것처럼 우리 삶에서도 노른자가 있고 그에 반하는 흰자가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에 있어서 흰자보다는 노른자가 많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만큼 깊숙이 들어가는 것에서는 두려움을 느낀다. '노른자 땅'이 다른 땅보다 비싼만큼 노른자 인생을 얻기 위해서는고통과 위험을 치뤄야하는 비싼 댓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 블로거는 노른자와 흰자를 이렇게 비유하기도 했다.


살아있다는 실감은 노른자에서만 누릴 수 있다. 마음의 평정은 흰자에서만 가능하다. 둘 다 장단점이 있다. 노른자는 강렬하지만 위험하고 고통스럽다. 흰자는 편안하고 안전하지만 권태롭다. 쇼펜하워가 말했듯이 고통과 권태가 삶, 즉 노른자와 흰자를 구성한다. 






살아있다는 실감, 그리고 마음의 평정.

살아있다는 실감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 중 5단계인 자아 실현의 욕구가 충족될 때만 느낄 수 있다. 그 외의 4단계는 마음의 평정에 속한다. 자아 실현의 욕구가 강하긴 하지만 하위 4단계만큼은 강하지 않다. 마음의 평정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흰자만 가득한 삶은 무미건조하고 권태롭기만 하다. 무엇보다 둘의 적정 비율을 유지하는 것이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해주는 역할이 되겠지만 '적정'이라는 말은 적당히처럼 애매하다. 상황에 따라 적당히라는 기준이 쉴새없이 바뀌기도 한다.  

흰자는 인생을 고난없이 조용히 살아가게 해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말은 고난이 있는 노른자의 삶을 포기했다는 말도 포함되어 있다. 도전적인 생활양식을 택하지 않더라도 노른자의 삶은 필요하다. 욕망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 욕망을 이루어주는건 노른자의 삶이기 때문이다. 

노른자가 가득한 삶은 고난과 역경이 가득할 것이고 흰자만 가득한 삶은 건조하고 권태롭기만 하다. 

글을 쓸 때, 바인더나 사진 찍기와 같은 취미활동을 할 때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끼곤 한다. 이건 확실히 내 인생에서 노른자다. 음악이나 영화와 같은 대중적인 취미는 노른자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좀 더 깊숙이 하지 않으면 모를까.  그 외의 삶은 흰자다. 일을 하더라도 그것 또한 흰자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실감보다 주기적으로 받는 돈에 있어서 마음의 평정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성향과 취향에 따라 노른자와 흰자의 비율은 다를 것이다. 그저 살아가면서 자신이 가장 적합한 비율을 찾을 수 밖에. 

[출처] 흰자와 노른자.|작성자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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