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락 모임원들과 MBTI 교육을 듣기 전에, 오랜만에 MBTI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뭐, 예측한대로 ISTJ. 벌써 5번 정도의 검사를 받은 거 같은데 불건강했던 한 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이 정도면 거의 내 유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MBTI를 처음 만나게 된 건 2008년 신입생 때였다. 당시 교지편집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던터라 다른 학교와의 교류도 잦은 편이었는데, 인천 내의 4개 대학교가 뭉쳐서 1박 2일동안 '리더십 캠프'를 한 적이 있었다. 거의 200명이 모인 대강당에 강사분이 오셔서 단체 검사를 진행했고 16가지 유형별로 인원을 배분하고 나니 정말 그 유형다운 행동들이 나왔다.
E(외향) 유형들은 대개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곧잘 인사를 하는 편이었고, I(내향)는 거의 고개만 숙이고 있는 모습이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기억 속에 또렷히 남아있다. 연이어 강사는 지금 같은 유형끼리 앉은 조별로 여행을 떠날 건데 (물론 가상으로) 계획을 한 번 짜보라는 미션을 던져주었다.
주로 직관이나 인식형을 가진 유형은 세계일주, 전국여행, 몇 개 대륙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보다 거창한 여행을 꿈꿨고 감각이나 판단형을 가진 유형은 몇 개의 도시, 또는 뚜렷한 테마 등 확실한 목적지를 정해놓는 현실적인 여행을 소개했다. 그 당시 그런 모습들이 너무나 재밌었고 흥미로웠기에 그 이후로 학교 다닐 때면 종종 학교 내에 있는 상담소에 들려서 MBTI 검사를 하고 전문가 선생님의 조언을 듣곤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MBTI 검사를 '재미' 또는 '흥미'위주로 궁금해서 진행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졸업을 하기 전 마지막 학기에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다. 그때가 이번 검사를 제외하고 가장 최근에 받았던 MBTI Form-K 검사였다.
이때 MBTI 검사를 받는 비용은 비싼 편인데도 사비를 들어 꼭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갈증이 심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 전부터 ISTJ 유형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항목 하나하나 세세하게 살펴보니 내가 어떤 유형인지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I유형인데도 그렇게 소극적인 편은 아니었는데 역시나 그대로 검사에 드러났다. 능동과 수동의 거의 중립에 위치하고 있었고, 감각 유형이 뚜렷함에도 가끔 직관적인 면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도 추론적인 면이 있었기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 외에 T(사고), J(판단)는 뭐 예상한대로 나왔다.
이때의 내용을 기반으로 블로그에 '자기 분석 보고서'라는 나에 대한 글을 하나 썼었다.
자기분석 보고서[Self-analysis Report]
조금씩, 조금씩 채워가던 내용들이 거의 A4용지 두 장 분량 정도로 완성이 됐다. 단순히 머리 속에만 갇혀있던 생각들을 이렇게 글로 풀어내니 좀 더 내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머리 속에서 생각하는 건 주관적인 면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서론에 얘기했듯이, 그러다 정말 오랜만에 MBTI 검사를 받았다. 3년 전의 검사와 지금의 검사에서 나온 내 유형은 많이 변했을까?
이게 최근에 받은 검사표다. 사고, 판단은 뭐 생각할 필요도 없이 늘 똑같다. 늘 '매우 분명'이라고 나온다. 떨떠름하긴 하지만 내 성격을 알기에 동의한다. 내향과 감각도 유형은 그대로 나왔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그때와 많이 달라졌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먼저 내향이 많이 약해졌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남들과 어울리다 보면 흔히 말해서 '기 빨린다'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에너지 소모가 컸다. 물론 밤새 술자리를 갖거나 소규모의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는 그렇게 에너지 소모가 심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평균적인 사람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컸다. 그래서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남들이 싫다거나, 불편하다는 둥 외부적인 이유가 아닌 에너지 소모, 즉 내부 요인에 의한 생각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머리가 어지럽거나 속이 불편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그 모습이 확.실.히 많이 사라졌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 그 동안의 노력으로 인해 에너지 소모가 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내향, 소극적인 성격은 환영받지 못한다. 혼자만 있고 싶어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시당하기 쉽다.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는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사회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대한민국은 개인주의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사회다. 개인보다는 공동체, 소수보다는 다수가 먼저인 사회이다 보니 소수 또는 개인의 희생 정도는 공동체, 다수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합리화한다.
아이러니하게도 ISTJ는 사회에서 가장 적응하기 쉬운 유형 중 하나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16가지 유형 중, 이 유형이 20% 정도나 포진되어 있을 정도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 유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속을 드러다보면 페르소나(가면)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다른 유형인데 사회에 적응하려다보니 사회 생활에 가장 적응하기 쉬운 ISTJ유형을 가면으로 쓰면서 생활한다. 그래서 실제 유형과 ISTJ 유형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에 원인 모를 스트레스도 받곤 한다. 이 현상은 사회 생활을 잘하는 사람일 수록 더 쉽게 발견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내 유형으로 돌아와서, 내향은 줄었고 감각은 오히려 늘었다. 전에는 중간수치 정도에 위치했다면 지금은 거의 T,J와 비슷한 수치까지 도달했다. 이건 100% 사회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카멜레온 같은 모습에서 기인했다는 생각이 든다. ISTJ는 어떤 상황에 주어지면 일단 자신이 행동해야할 청사진을 제시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다시 말해서 누가 뭘 시키지 않아도 미리 뭘 해야할지 판단이 선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남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약삭빠르고 현실적인 사람으로 비춰진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의 속내를 절대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좀 다르게 보여줘도 괜찮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I는 줄었고, S는 늘었다. 그리고 T와 J는 그대로다.
ISTJ는 굳이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될 상황까지 고려하면서 사서 고생하는 타입이다. 그렇다고 신경 쓰지 말자니 그게 더 스트레스니 어찌보면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스트레스 덜 받으려고 모든 상황을 고려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MBTI, 그리고 강점혁명
MBTI는 종합적인 방향을 제시해준다면 강점혁명에서 나오는 검사는 자신의 강점 5가지를 제시해준다. 바스락 모임에서 미리 검사를 하신분께서 추천을 해주셔서 검사를 받아봤다. 나의 5가지 강점은 아래와 같다.
집중, 분석, 개별화, 책임, 존재감
이 강점들을 MBTI 설명과 약간 접목하자면 집중은 J에 가깝다. 분석은 S, 개별화는 I+T, 책임은 T+J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신기한게 존재감이다. ISTJ는 오히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나지 않기 위해 사는데, 나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 나를 파악하지 못했다.
앞으로 계속 파악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MBTI 검사를 통해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파악해보니 그동안 어떤 사건으로 인해 어떻게 변했는지, 그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나중에 조직에 적용해봐도 굉장히 재밌을 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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