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 달에 한 번씩 하는 일이 있다면 그건 책을 떠나보내는 일일 겁니다. 이번에는 꽤 많은 19권을 팔았습니다. 한 번이라도 꺼내본 책은 떠나보내기가 쉬웠습니다. 문제는 아직 펼쳐보지도 않은 책이었습니다.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을 몇 개월 보관했다가 다시 파는 일이 흔해졌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고 크게 욕심 내본 적은 없지만 만약 내가 부자가 됐다면 그건 많은 책을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지금은 책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앞으로는 전자책을 자주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전자책 리더기를 샀고 인터넷 서점보다 리디북스를 더 자주 들어갔습니다. 다짐으로 조금씩 가벼워지는 삶은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발길이 닿는 대로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목적지가 분명해 잠들기 전 오늘 하루는 참 알찼다고 말하기를 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정처 없이 흘러가는 여행에 가까웠습니다.
마음이 꿀꿀할 땐 오프라인 서점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뭐든지 명확한 인터넷 서점에서는 내가 원하는 책을 찾기 쉬웠지만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한참을 헤맸습니다. 때론 내가 원했던 책을 잠시 잊은 채 마음이 가는 책을 손에 들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내가 책을 찾기보다 책이 나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만난 책을 들고 서점을 나서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습니다. 그런 날에는 집으로 곧장 가는 대신 카페에 들러 좋아하는 음료를 시키고 책을 읽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다시 한번 짧은 여행을 떠났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손이 가는 대로 집은 기념품처럼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나는 다시 책을 떠나보내야 할 겁니다. 이미 서점에서 나오는 길부터 직감했겠지만 그럼에도 이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아마 이 여행은 내가 살아있는 한 계속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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