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혹시 그 분이 계신 곳?"
지난 주 월요일부터 카카오플백 시즌4가 시작되었다. 내가 운영하는 책 읽기, 플래너 쓰기 외에 아는 분이 운영하는 걷기 모임 정도만 참여하기로 다짐했는데 호기심을 끄는 프로젝트에 이미 손이 가고 있었다.
'100일간의 행복기록'
이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매니저 닉네임이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였다.
"가만 있어보자. 서울대 행복연구센터면 혹시 굿 라이프? 최인철 교수?"
궁금한 건 참을 수 없다. 바로 검색을 해봤다. 맞았다. 최인철 교수가 그 연구센터의 센터장이었다. 책 내용은 잘 잊어버려도 이런 쓸데 없는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렇게 시즌4도 4개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행복한 순간을 수집해보세요'
'행복했던 기억을 매일 적어보세요'
'무엇을 하면 행복해질 거 같나요?'
행복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라고 해서 이럴 줄 알았다.
물론 예상은 틀렸다.
이 프로젝트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단순했다.
매일 똑같이 주어지는 10개의 질문에 1점부터 10점까지 점수를 매기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질문은 긍정 정서와 부정 정서를 묻는 질문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지금 행복하나요?'
'지금 평안함을 느끼시나요?'
'지금 지루함을 느끼시나요?'
'지금 우울감을 느끼고 계신가요?'
'지금 짜증나는 일이 있나요?'
'지금 불안한가요?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매일 똑같은 질문이라면 당연히 점수도 비슷하지 않을까? 일주일쯤 직접 테스트해보니 예상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행복한 날과 그렇지 않은 날에는 점수 격차가 심했고, 행복한 날의 점수는 거의 비슷했다.
일주일동안 내가 기록했던 내용을 한 번 살펴보자.
3월 22일 : 64점
5시 40분에 기상을 했고, 알디프 샹들리에 차를 마시면서 HEM 인센스를 피우고 책 <노희영의 브랜딩 법칙>을 읽었다.
3월 23일 : 74점
아침에 일어나 책 <노희영의 브랜딩 법칙>을 완독했고, 청포도를 먹었다. 역시 먹고나서 검사하면 점수가 높나?
3월 24일 : 74점
아침 일찍 일어나 책 <뉴타입의 시대>를 읽었고, 알디프 경화수월 티를 마셨다. 그리고 HEM 인센스를 켜놓고 향을 음미했다. 기분 좋은 하루다.
3월 25일 : 56점
어제 술을 마셨고, 오늘 아침 인증을 건너뛰었다.
3월 26일 : 76점
책 <뉴타입의 시대>를 읽었고, 오설록 달빛걷기 티를 마셨다. 아침에 일어나니 우측 갈비뼈 부분에 통증이 있어서 신경 쓰인다.
3월 27일 : 75점
성북천에 1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3월 28일 : 55점
일요일이 끝나감 흑흑
3월 29일 : 75점
책 <뉴타입의 시대>를 완독하고, <언카피어블>을 읽었다. 그리고 HEM 인센스로 향을 음미했다.
겨우 일주일이 지났지만, 내 행복에 대해 이렇게 정의해볼 수 있다.
1. 측정을 하기 전에 무언가 먹으면 점수가 높다.
2. 취향이 있으면 나를 행복으로 데려다줄 확률이 높다.
3. 일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 땐 점수가 낮았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 속이 쓰려서 대신 마셨던 티(Tea)는 어느덧 취향이 됐다. 덕분에 행복을 부르는 리추얼이 되기도 했다. 또한 아직 정신이 맑지 않은 아침에 인센스를 피워놓고 있으면 잠이 달아나면서 집중력이 올라간다.
반면 전날 저녁에 술을 마실 땐 좋았지만 다음 날 아침 기상을 하지 못했을 땐 실패감에 점수가 낮았고, 어쩌면 직장인은 월요일보다 일요일이 더 우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더불어 매일 행복을 생각하게 되면서 느낀 점은 내가 바로 전에 무엇을 하고 있냐에 따라 지금의 행복을 결정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이 사실을 잘 모른 채 지금 행복하면 내 인생이 행복한 거고, 지금 불행하면 앞으로도 계속 불행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마치 마트에서 다른 사람의 카트를 곁눈질로 보다가 무의식적으로 사게 된 것이, 내가 먹고 싶어서 산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막상 그렇게 사고 나면 먹지 않을 확률이 높다. (평소에 맛있게 먹던 걸 계속 먹는 게 제일 맛있는 법이다)
아직 행복을 기록하는 93일이 남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점수로 기록하고 있다고 말하니 '90점 이상은 안 나왔어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 또한 착각하지 말자.
행복은 절대적인 기준을 두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 가능성 그 자체다. 항상 내가 받은 점수를 기준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지, 다른 사람의 점수가 높거나 낮다고 해서 내 행복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것은 단지 열등감(또는 우월감)으로 불행을 부르는 주문일 뿐이다.
행복한 일상은 행복한 삶을 만든다. 반대로 불행한 삶은 불행한 일상에서 오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삶'이 아닌 '일상'이다. 10년 뒤에 행복해지려면 무엇부터 해야할지 감이 오지 않지만, 한 시간 뒤에 행복하려면 당장 무엇을 해야할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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