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지난 프롤로그 <인생을 바인딩하라>에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해서 잠깐 언급했습니다. 2화에서는 <바인더를 쓰기 위한 준비물>이라는 제목으로 타공기와 용지에 대한 글을 썼죠. 바로 하드웨어에 해당합니다. 이번 글은 균형을 위해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기록법과 활용법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본인만의 기록법과 활용법이 있는 사람은 잘 쓰기 이전에 꾸준한 사람입니다. 꾸준하지 않으면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기기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하기 어려운 이유는 과정 곳곳에서 드는 의문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시간관리는 크게 '기록'과 '계획' 영역으로 나뉩니다. 새해가 되면 연간 계획을 세우지만, 연말이 되면 연초에 세운 계획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요. 기록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거나, 의욕을 잃어 중도 포기할 확률이 높죠. 전자는 자주 들여다보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후자로 갑니다. 전자에 해당하든, 후자에 해당하든 결국 중간에 포기하는 불상사가 발생합니다.
지난 몇 년간 많은 사람과 함께 기록을 이어가면서 발견한 패턴을 보면 대부분 계획은 과대평가, 기록은 과소평가합니다. 우리는 계획을 세울 때는 리더(팀장)의 입장입니다. 작년의 부하는 질책하고 올해의 나한테 지시를 내리면 되죠. 반면 기록할 때는 부하의 입장입니다. 매 순간마다 스트레스받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연초에 세운 계획도 버겁기만 합니다.
가계부를 쓸 때 과거 재정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면 현재 상황에서 처방은 의미가 없습니다. 최근 3개월 정도 작성한 가계부가 있다면 그 데이터를 토대로 지출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계획이 잡히죠. 시간 관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록이 선행되어야 계획을 달성하기가 수월합니다. 처음 세우는 계획은 보통 단위가 큽니다. 누구나 작성해봤을 버킷리스트는 '언젠가 이루겠지'라는 생각으로 작성하는 큰 계획이죠. '책을 한 권 쓰겠다', '집을 사겠다', '전문가가 되겠다'와 같은 계획도 마찬가지고요. 큰 계획은 추상적이라 수치화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어떻게든 실천에 옮긴다고 해서 당장 티가 나지 않아 가득했던 의욕은 점점 내리막길로 향하게 됩니다.
과정 곳곳에서 드는 의문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위에서 말한 '과정 곳곳에서 드는 의문들'부터 파악해볼게요.
- 이번 주에 계획한 게 매번 어긋나네.. '계획하는 게 의미가 있나..'
- 기록해도 바뀌는 게 없네. 계속해야 되나?
- 다음 주는 설 연휴고, 그다음 주는 여행 가니까 잠깐 기록 멈추자. 갔다 와서 하지 뭐.
- 이번 달 망했다. 오늘이 15일이라 애매하니까 다음 달부터 다시 하자.
1. 계획이 어긋나는 건 당연합니다.
계획대로 살 수 있다면 영화 <플랜맨>을 추천합니다. 융통성이 없으면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관대해서는 안됩니다) 계획은 연필로 쓰세요. 언제든 변동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우고 다시 펜으로 쓰면 됩니다. 책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틀린 것에서 덜 틀린 방향으로만 나아가면 됩니다. 계획이 어긋난 사실에 스트레스받지 말고 조금씩 덜 어긋나는 방향으로만 가도 충분합니다.
2. 원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기록이 슬슬 지겨운 거예요. 그만하고 싶어서 바뀌는 게 없다고 핑계 대고 멈추고 싶은 겁니다. 멈춰도 됩니다. 하지만 지겨움이 가시면 다시 돌아올 거예요. 그럼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반복하시면 됩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안 하던 거 하면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무한대로 만들어냅니다. '해야 할 이유' 하나에 집중하세요. 그 이유 때문에 시작한 거니깐요. 시작할 때는 당장 변화한다고 기대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의지가 약해지면 변명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환경을 바꿔보세요. 주변이 기록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면 나도 기록할 수밖에 없습니다.
3. 갔다 와서 안 해요. 안 합니다.
작년 설 연휴에도 그랬고, 그 전 여행에서도 당해봤으니 본인이 가장 잘 압니다. 좋은 습관은 오랜 시간에 걸쳐 겨우 생성되는데, 단 하나의 이벤트로 금방 무너집니다. 기록을 간소화하세요. 메모장에 적어도 좋고, 카카오톡 나만의 채팅에 적어도 좋습니다. 간단한 기록이라도 멈추지만 않는다면 다시 일상으로 왔을 때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연속 37일 차, 38일 차가 되면 멈추기 아쉬워서 계속하지만 중간에 하루 이틀 빼먹어서 '연속'이라는 단어가 사라지면 죄책감을 느낍니다. '설 연휴 때 어차피 한 것도 없는데, 적을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에 건너뛰지 마세요. 한 게 없으면 적기 더 쉽죠. 뭉뚱그려 적으면 되니깐요. 갔다 와서 하지 말고 연휴나 여행 중에도 간소화된 기록으로 이어가세요.
4. 1달 말고 1주일을 버리세요.
감기 걸렸다고 1달을 버리진 않아요. 보통 1주일 푹 쉬면 낫습니다. 기록도 1주일만 내려놓고, 다음 주부터 다시 시작하세요. 기록의 관점에서 1년을 365일로 나누면 가장 좋지만 익숙하지 않으면 기록이 일상을 잡아먹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면 데일리 노트를 작성해보세요.) 1년을 52주로 나눠서 움직이세요. 계획은 월 단위가 보기 편하지만 기록은 주 단위가 좋습니다.
역산 스케줄링
'과정 곳곳에서 드는 의문들'을 통해 기록법을 얘기했으니 이제 활용법을 얘기해볼까요. 연간계획을 주간계획으로 옮기는 역산스케줄링* 활용법입니다.
순행 스케줄링 : 현재를 기점으로 순차적으로 계산해 목표 달성 시기를 추정
* 역산 스케줄링 : 미래를 기준점으로 역산해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선택
작년 연말에 세운 올해 계획입니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만다라트로 2019년 계획하기]를 읽어보세요.
2019년 1월 목표를 세울 때 만다라트로 작성한 연간계획에서 지금 집중하고자 하는 5가지의 목표를 가져왔습니다.
- 탄산 멀리하기
- 글쓰기
- 매일 습관(가계부)
- 많이 실패하기
- 취향마이 구상
이렇게 목표만 세우면 지킬까요? 저도 안 지킵니다. "이번 달은 탄산 멀리하고 글 많이 써야지~" 싶다가도 어느 순간 바쁘다는 이유로 패스트푸드점과 극장에서 팝콘과 콜라를 먹고 있습니다. 계속 들여다보지 않으면 잊기 마련입니다. 그럼 습관도 잃습니다.
월간 계획은 바인더에 철하고 자주 점검합니다. 매일 체크할 필요는 없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번 달 '1월 계획'을 지키는 것이지. 매일 '1월 계획 체크'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문자로 도착한 결제 내역과 주간 계획을 통해 이번 주에 탄산을 섭취했는지 파악할 수 있고, 글쓰기는 흔적이 남아있기 마련입니다. 일상 곳곳에는 기록에 대한 힌트가 숨어있습니다. 하나씩 찾아서 기록하기 수월한 장치로 만들어놓으세요. 월간 계획은 자주 체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시간이 없을 때는 며칠에 한 번씩 체크해주면 됩니다.
저는 '탄산 멀리하기' 목표 같은 경우 이번 달에 잘 지키다가 10일과 11일에 실패했습니다. 기록을 살펴보니 극장(환경)이 문제더라고요. 마침 써야 할 매점 쿠폰이 있어서 콜라를 먹었습니다. (핑계죠) 다음부터는 추가 요금을 내서라도 다른 음료로 바꿔 마시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완벽하게 지키는 것보다 언제 무너졌는지 그리고 개선책이 뭔지 찾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목표에 처음 도전할 때는 70~80% 정도를 성공의 척도로 두고 차근차근 달성률을 올리세요. 한 달에 10번 마시던 사람이 갑자기 한 모금도 마시지 않기 어렵습니다. 7~8번은 마시겠다고 생각하세요. 목표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는 환경을 바꾸거나 의지를 강화합니다. 탄산에 무너지기 쉬운 극장을 끊거나 극장은 가되 콜라는 먹지 않겠다는 다짐이죠.
의지로 되면 환경을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환경에 노출될 때마다 의지가 약해진다면 환경을 변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아예 그곳을 가지 않는 것이 지금의 저로서는 최선의 방법이겠지만 저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일단 가는 횟수를 줄이고 '탄산을 얼마나 자주 마시는지' 체크합니다. 덜 틀린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면 본인에게 천천히 시간을 주세요. 목표에 따라서 '의지'와 '환경'을 체크해보고 본인에게 맞는 방법이 있으면 그대로 쭉 가세요. 이렇게 하면 이전보다 개선되기 마련입니다.
가계부는 늘 방식이 고민입니다. 이번 달에는 워크플로위를 통해 매일 기록하는 방식으로 써보고 있는데, 아직 습관이 들지 않아 이번 달 계획으로 잡았습니다. '매일 습관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분들과 함께 인증하다 보니 지금까지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잘 쓰고 있습니다. 인증은 최고의 습관이죠. 안 될 때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강제성과 선언 효과의 힘이죠.
참고 글 - 꾸준히 잘하는 방법
계획은 보통 워크플로위와 주간 계획표에서 세우는 편이라, 먼슬리(월간계획표)는 3M 스티커 라벨을 통해 결과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브런치, 독서, 영화 이렇게 색상을 나눠 기록합니다. 아직 하늘색 스티커가 하나 남아 있는데 다른 목표를 위해 아껴두고 있습니다. 월간계획에 있는 '글쓰기'는 먼슬리에서 브런치 스티커 개수만 세면 됩니다.
주간 계획표는 개인 정보가 많아 구석만 살짝 공개할게요. 할 일(To-Do)과 타임테이블뿐만 아니라 주간 목표, 읽은 책들, 체크리스트, 메모 등을 기록합니다. 1월 2주 차 목표는 지금 쓰고 있는 '바인더 매거진 1개 쓰기'였는데요. 월간 목표에서 '글쓰기'에 해당되겠죠? 이번 주에 해당하는 3주 차 목표는 '매일 50P 독서' 및 '매일 감사 및 개선 일기' 작성입니다. 월간계획에 없는 목표죠. 대신 연간계획에는 있습니다. 월간계획이 잘 진행되고 있다면 굳이 주간 계획에 역산할 필요 없이 올해 다른 목표를 가져옵니다.
연간계획→월간계획 : 이번 달에 집중할 목표를 가져온다.
월간계획이 잘 진행되고 있는가?
YES : 그대로 월간에서 관리한다.
NO : 주간으로 가져온다.
답이 YES라면 주간 목표는 굳이 월간 계획으로 할 필요 없이 연간 계획에 있는 목표를 가져오면 됩니다. 월간 계획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말은 컨디션이 좋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목표를 한 번에 진행해도 무리가 없다는 뜻이죠. 반면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이번 달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월간 목표'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모든 건 어긋나기 마련이에요.
어제를 기록하고 오늘을 개선한다. 이게 기록의 기본입니다. 모든 건 어긋나기 마련입니다. 방향만 맞게 가고 있다면 매번 계획의 진척도에 스트레스받지 마세요. 진척도를 과하게 올리다가 전체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기록하고 개선하다 맞는 방법을 찾으면 속도는 붙기 마련입니다. 그때 충분히 탄력 받으면 됩니다. 변화는 뎌디기 마련이에요.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맞게 가고 있는가? 의심하는 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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